이 리뷰를 보고 나서 영화를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이 사람의 시점은 정확한 것 같고 나도 그렇게 느낀다,

 

1. 주제곡 :

Alicia Keys를 좋아하긴 한다,

그러나 이 노랜 정말 아니다-_-;;;오프닝 내내 '아아~'거리기만 할 뿐,

 

2. 제목 :

제목이 무려 Quantum of Solace다,

제목에서도 그랬고, 저 위의 팟캐스트에서도 그렇듯, 이 제목을 Pond of Tree라고 바꾸어도,

실제로 영화를 보는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제목이니까,

대충 해석해보면 전편에서 본드가 겪은 격한 상실에 대한 슬픔의 양, 이라고 봐 줄 '수도' 있다.

그러나...

 

3. 스토리 :

그렇게 보기엔 스토리가 너무 중구난방이다,

007이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뛰어다니고 총질을 하고 카체이스를 벌이는지,

얼마나 큰 슬픔을 안고 그러고 있는지,

종국에 가서는, 정말로,

제임스 본드가 누굴 죽이고 뭘 하든지 전혀 신경쓰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

 

4. 액션 :

나는 솔직히 007이 제이슨 본을 따라가는 것에 대해서 그렇게 부정적인 입장은 아니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는 정말 다음 편에선 그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이 있다,

거의 제임스 본드를 철의 인간으로 만들어버려놓고는 철근에다 갖다 박는 영화다,

지난 편의 핵심은, 제임스 본드도 감정을 느끼는 하나의 인간이라는 점이었다,

총상을 입고 아파하고, 사랑에 아파하는 하나의 인간,

이 영화가 전편에서 계속 이어지는 영화였다면 어느정도는 그것을 보여줬어야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감정이라는 것이 없이 끊임없이 싸우기만 하는 영화다,

 

5. 결론 :

스토리도 결론이 난 것이 전혀 없고,(그래서 Quantum이라는 단체가 어떻게 된 것인지도 안 나온다!)

본드 걸도 액션을 위한 부수적인 악세사리에 지나지 않는다,(실제로 난 본드걸이 누군지 모르겠다,)

 

......어떻게 이런 영화를 만들 수가 있는지 난 정말 이해가 안간다...

 

저는 MBC 드라마를 대체적으로 재미있게 보는 편입니다,

.......라기 보다는 제가 보는 몇 안된 한국 드라마 모두가 MBC의 드라마입니다....

궁, 커피프린스, 태왕사신기, 그리고 이번 베토벤 바이러스까지.

.......이거밖에 어째 생각이 안나네요.

 

어쨌든!

이번에도 베토벤 바이러스 제작 발표를 보면서 나름 기대를 많이 햇었더랬습니다,

김명민은 물론이고 이지아, 장근석까지 여러모로 기대되는 면이 많았거든요,

물론 그 정점은 홍자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전 사실 이 분들의 드라마는 많이 보질 못해서....

 

그리고, 이 드라마가 마지막으로 치닫는 지금에서야, 여느때처럼, 제 느낌을 이제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①주제의식,

 베토벤 바이러스 라는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부터, 들려온 이름은 이지아와 장근석 그리고 김명민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사람을 드라마의 핵심이라고 막연히 생각했고, 그 외의 인물에 대해서는 아무런 생각도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드라마가 모습을 드러내고 난 뒤, 드라마에서 주로 보여준 것, 그리고 사람들이 주로 반응한 것은, 박희연/박혁권, 김갑용/하이든 페어였습니다. 물론 모든 케릭터의 위에 군림하고 있었던 것은 강건우 마에스트로였지만, 내가 보기에 그 사람은 인간의 범위를 벗어난 존재니까.....

 결국 이지아와 장근석은, 초반 시청률을 끌어내기 위한 도구에 불과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더군다나 두루미가 귀가 멀어간다는 설정은 더군다나 있으나 없으나 한 부분이었으며 실제로 드라마에서는 잊을만하면 이명이 들리는 식으로 간간히 보이기까지 하니 말 다 한 셈이죠, 실제로 이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메시지와 주제의식은 조연들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오케스트라 멤버들이 악전고투하는 장면들을 보여주면서 우리나라에서 예술, 그 중에서도 음악, 더군다나 순수음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제시하면서 드라마는 박혁권을 내세운다.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이 얼마나 어려운 삶을 유지하고 있는지, 그리고 대한민국 아줌마들이 얼마나 고달픈 삶을 살고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드라마는 박희연을 보여준다.

 

②여전히, 현실이다.

 그리고 역시, 베토벤 바이러스가 만들어진다는 소식이 들려올 때부터 들려온 단어는 '노다메 칸타빌레'였습니다. 똑같은 클래식을 소재로 하고 있고, 더군다나 이번에도 일본의 아이템이 먼저 나온 뒤에 나오는 드라마라 여지없이 표절이네 어쩌네 하는 비판(비평이 아닙니다)들이 만연했었습니다.

 노다메칸타빌레가 음대에서 발생하는 일종의 판타지를 보여주고 있다면, 베토벤바이러스는 사회에서 발생하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이 논란의 종결점이 될 것 같습니다. 노다메와 친구들은 어디까지나 학생이며, 그들의 경제적인 어려움은 전혀 드러나지 않으며 단지 자신의 실력에 대한 문제라던가 사람들 간 소통의 문제만이 주된 내용일 뿐입니다. 과연 이들이 졸업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실제로 이들이 살아가게 될 삶의 문제에 대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베토벤 바이러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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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다메 칸타빌레는, 어쩔 수 없는 만화다.

 그리고 베토벤 바이러스가 처음부터 끝까지 내세운 것도 '현실'입니다. 어떻게 보면 원작이 만화인 노다메 칸타빌레와, 우리나라와 같이 정극이 유행하는, 더군다나 이리도 문화적으로 삭막한 사회에서 나온 베토벤 바이러스는 태생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베토벤 바이러스의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합니다, 우리들이 그러하듯이, 이들이 얻은 유일한 성취는, 하이든의, 오랫동안의 방황 끝의 영재학교 입학, 그 이상은 없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계속해서 '진흙탕을 뒹굴면서 만신창이'가 됩니다. 자신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니기 때문에, 자신을 믿고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주인공들은 끊임없이 이상을 향해 달려가다가도 현실과 타협하는 모습을 쉽게 보여줍니다. 혼자 고고하며 깨끗하고 곧은 모습을 보여주던 강마에가 결국 정치가들과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아무리 음악을 하려고 노력해도,

아무리 오케스트라 무료 공연을 하더라도,

이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사람은 없으며,

두루미의 귀는 낫지 않고,

박혁권의 집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희연은 이름만 가지게 되었을 뿐, 가족에겐 여전히 아무것도 아니다,

김갑용 할아버지의 치매는 결국 낫지 않을 지도 모른다,

③ 그래도, 꿈꾸고 싶다.

 그래도 이 드라마는 강건우 마에스트로를 통해서 끊임없이 꿈에 대한, 희망에 대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 드라마는 꿈과 이상이, 현실과 끊임없이 충돌하는 그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전체적인 형태는 강마에가 끊임없이 보여주는 이상과, 그와 대비되는 다른 인물들의 현실에서의 좌절을 드러내면서 보여주는 것인데, 어쩔 수 없이 현실과 적정 선에서 타협하면서도 자신만의 논리로 말만큼은 이상의 끈을 놓지 않는 강마에를 보여주면서 드라마는 계속 꿈을 꾸는 행위에 대한 희망을 보여줍니다.

 

④ 결론,

 뭔가 드라마를 보면서 쓰려고 했던 내용은 많은데 정작 여러번에 나눠서 쓰다보니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가는 듯 해서 황급히 접는.....

 베토벤 바이러스는 여러모로 신선한 드라마였습니다, 주연보다 조연이 더 앞으로 나서는 경우도 있었고, 한번도 본적이 없던 사람들이 당당하게 앞서서 스토리를 이끌어나가기도 하는 도전 정신이 발휘된 드라마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형식과 함께 강마에라는 새로운 성격의 케릭터가 리드를 해도 드라마가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 드라마구요,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 드라마가 처음에 화제의 중심에 있게 된 것은 김명민/이지아/장근석이라는 점에서 약간 아쉽긴 합니다.(영화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 찾던 것만 찾는 경향이 있는 듯, 이수영과 빅뱅이 인기를 얻은 것도 그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자기가 자기 노래를 표절하는 가수라고 저는 표현하죠;;;)

그 일이후로, 영화는 불친절해졌다.

2008년 영화계는 클로버필드라는 한 편의 영화로 막을 열었다. 정체불명의 대 괴수가 뉴욕 맨해튼을 휩쓸고 다닌다는, 극도의 간단한 플롯을 가진 이 영화는 단 한가지 이유로, 제작과정부터 시사회까지, 그리고 개봉 이후로도 아주 압도적인 티켓파워를 자랑하며 승승장구했다. 바로 불친절하다는 이유.

이 영화는 어떻게 해서 이 괴물이 만들어졌는지, 심지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이 일이 있고 난 뒤 괴물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단지 끊임없이 부서지는 건물들의 모습과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이 영화는 대 괴수침공이라는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시네마스코프(2.35:1) 비율을 사용하지 않고 실제 캠코더의 HD 비율(16:9)을 사용하고 있으며 영화가 끝나가도록 부감샷을 쓰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 이 영화는 관객이 괴물이 도시를 침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만 할 뿐, 도시를 침공하고 있는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의도를 전면에 내비친다.

할리우드 영화는 그 시대의 재난의 모습을 빌어 대표적인 상징을 드러낸다. 그리고 2001년의 그 일이후로, 할리우드는 테러리즘을 끊임없이 변주하고 있다(우주전쟁, 뮌헨, 클로버필드, 나는 전설이다 등등.) 9.11 전과 직후 적은 분명해 보였지만 미국이 스스로 시작한 전쟁이 또 다른 악몽이 되면서 적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강한 존재로부터 공격받고 있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극한의 두려움, 그 손아귀에서 헤어나거나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는 완벽한 절망감, 더군다나 이 모든 것들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자기 눈 앞에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전면에 표방하고 있는 영화들이 21세기에 들어서 물밀듯이 쏟아지고 있다.

포스트 9.11 재난 영화의 모습은 사건 전체에 대한 논리적 설명의 부재, 난데없는 재앙의 시작, 어찌할 바 없이 방황하는 무기력한 인간들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끝을 드러내지 않거나 완전한 해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그 공포를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이어가는 모습으로 정형화된다. 가장 결정적으로, 이러한 영화들은 주인공이 어떠한 것을 상대하고 있는지 명백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적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갖추지 못한 무방비상태로 그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할리우드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괴물』이 그러했고, 이제부터 이야기할 스페인의 『●REC』 도 그러하다.

클로버필드의 유럽 판?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하자면, TV 프로그램의 리포터와 카메라맨이 촬영을 위해 소방서에 방문한다. 소방관들의 일상을 취재하던 중 한 통의 구조요청 전화가 울리고, 대원들을 따라 사고현장으로 출동한 이들은 밀착취재를 시도한다. 그러나 건물 안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느낀 일행들은 급히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모든 출입문은 당국의 폐쇄조치로 봉쇄된 상태. 원인도 모른 채 꼼짝 없이 건물 안에 갇히게 된다. 그 와중에 무언가에 전염된 듯 사람들이 하나 둘 기이하게 변하고, 아직 온전한 사람들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건물 안을 벗어나려 한다.

이 영화는 클로버필드가 개봉한 직후에 나왔고, 여러모로 같은 포맷을 차용했다는 이유로 여러 쓴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두 영화 모두 위에 말한 포스트 9.11 재난 영화의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고, 현장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을 애초에 영화 내 인물로 설정하며 영화 전체를 핸즈헬드 캠코더로 촬영하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화면의 흔들림을 전혀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부각시켰다. 클로버필드가 REC보다 훨씬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할리우드의 자본과 지저분할 정도로 치밀했던 노이즈/티저 마케팅 덕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자체만을 두고 봤을 때 REC가 더 우위에 있는 것은 확실한데, 이제부터 그 점을 말해보고자 한다.

내내 클로버필드를 재앙 영화라고 칭했지만, 이 영화는 사실 재앙 속의 러브 스토리. 중요한 것은 괴물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해 처해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REC는 괴물이 나타났고 우리는, 그보다도 자신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상대적으로 한가지 소재에 집중한 REC는 비슷한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공포의 밀도가 높고 정돈되어 있다. 소재와 관련해서 한마디 더 하자면, 클로버필드는 괴물이 나오는 영화고, REC는 변종 인간, 쉽게 말해서 좀비가 나오는 영화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무서워하지만, 자신과 소름 끼칠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미묘하게 다른 것에 공포를 느끼고 심한 경우 공격성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 대상도 자신에게 공격성을 띌 때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클로버필드보다는 이쪽이 더 원초적인 공포를 잘 건드렸다고 본다.

영화 전체가 부감샷과 시네마스코프 비율을 일절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스크린 자체의 모습은 좁고 갑갑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클로버필드와는 달리 REC의 경우는 배경이 되는 장소 자체도 정부에 의해서 철저하게 봉쇄된(심지어 핸드폰도 수신되지 않는다!) 아파트 건물 하나로 좁게 한정시켜 버린다. 관객이 물리적으로 보는 모습과 더불어 배경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 자체가 폐쇄적인 형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이 습격으로부터 절대로 도망갈 수 없다는 생각을 깊숙이 심어버리게 되고 나타나는 모든 재앙들이 훨씬 더 현장감 있게 보인다.

군중 속의 고독, 무능한 정부, 21세기의 슬픈 자화상.

공포영화가 가지는 가치는, 단순히 웃고 즐기는 오락거리로만 치부되는 이 장르 안에 당시 시대의 문제점을 관통하는 비유와 날카로운 비판이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좀비 영화 3부작(공교롭게도 이 3부작의 마지막인 ‘Diary of the Dead’ 또한 클로버필드와 REC와 같은 포맷을 띄고 있다.)이 대표적이다. 물론 단순히 피가 난자하는 슬래셔 영화도 있고, 단순한 공포 만을 선사하는 영화도 많지만 의외로 공포 영화에 숨어있는 비유는 단순히 웃고 넘기지 못할 내용들이 많다.

앞에서 간단히 말했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괴물이 나타났고, ‘나는살아남아야겠다는 내용이다. 이 안에 있는 열명 남짓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믿고 있지 않는 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영화적 장치이지만, 자신과 함께 일하던, 혹은 같은 위치에 처해있던 사람에게 좀비 바이러스가 전염되자 가차없이 몰아내고 수갑을 채우며, 한치의 망설임 없이 공격하는 모습도 그렇고, 초반부에 나오는 인터뷰 장면에서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모를(일본인이었다) 동양인들에 대한 막연한 의심을 보이는 사람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웃에 대한 관심도 없으며, 이웃이건 그날 처음 본 사람이건 간에 타인에 대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자신과 다르거나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 인간적인 애정이 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자신이 살아남아야겠다는 원초적인 본능과 중간에 지나가듯 한번 나오는 모성애, 가족애일 뿐이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은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이제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타인은 단순히 무관심의 대상이나,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트리게 되는 대상이 아니라 자신과 다르기 때문에, 자신과는 이해관계상 대립되거나 심지어 단순히 무관하기 때문에 배척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영화는 단지 그것을 자신의 생명이 달린 극한 상황에서 보여줄 뿐이다.

영화의 극 초반부,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주인공들이 있는 건물 전체를 봉쇄하게 된다. 곧 전문가 두세 명이 피해자들을 보기 위해 들어오고 이들도 바이러스에 전염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남은 러닝타임 내내, 밖에 있는 정부 관계자들은 나오지 말라는 말만을 되풀이 할 뿐이다.

21세기만큼 대중의 힘이 막강해진 때도 없다. 인터넷과 통신기술은 산골 오지의 사람들과 도시 한복판에 있는 사람을 연결시키고, 더 이상 정부의 극비사항이란 것은 존재할 수가 없게 되었다. 국가 권력의 위상은 그만큼 실추되고, 하나로 응집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퍼진 형태를 가진 대중의 힘이 정확히 그 반대의 속성을 가진 국가 권력의 힘을 압도하면서 더 이상 대중들은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정부를 믿지 않게 되었다. 이를 반영해서, 사건 해결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정부의 모습은 비단 REC에서만 보이는 모습은 아니다. 정부의 요원이 주인공인 007로 대표되는 첩보물이, 21세기에 들어서는 정부를 적으로 돌린 제이슨 본 시리즈로 대체되는 과정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REC에서는 특이하게도 아예 플롯 전개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을 배제시키고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키는 요소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영상은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TV 다큐멘터리의 내용입니다.

물론 실제로 저런 변종 인간이 설치고 다닐 리는 만무하지만, 이 영화는 소재와 촬영기법 모든 면에서 극도의 리얼리즘을 표방하고 있다. 감독은 이 사실주의를 실천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영화가 현실의 허구적인 반영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Mientras Usted Duerme)라는 프로그램은 실제 스페인에 있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에서 6시쯤에 하는 세상에 이런 일이같은 부류의 현장르포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주인공 Ángela역을 맡은 Manuela Velasco는 실제 이 프로그램의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으며, 카메라맨 역할을 맡은 Pablo Rosso(극 중 이름도 Pablo이다!) 실제 촬영감독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지 모르는 우리들에게는 와 닿지 않겠지만 스페인 현지에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중간에 나타나는, 난간 사이로 시체가 난데없이 떨어지는 장면은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순수하게 놀란 배우들의 모습을 제대로 잡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맺으며,

영화 외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지만, 이런 식으로 극도의 현장감과 현실성을 강조한 작품들이 쏟아진 지는 오래 전이다. 이 영화도 여느 영화들과 다를 바가 없고 일전의 공포 영화와 비슷한 구조를, 심지어 낮은 예산을 처리하기 위해 한정된 배경을 설정하는 것까지도, 취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난 것은 2004년에 마드리드에서 있었던 열차테러 사건이다. 뭐 정치적인 술수로 인해서 ETA에게 뒤집어 씌우려 했다 라는 것보다도, 이러한 무차별 테러가, 다른 대륙의 미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역시 스페인에도 비슷한 영향을, 특히 영화에 비슷한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편으로는 이러한 공포가 전 세계적으로 나돌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슬프기도 하지만 말이다.

신세한탄,

La Vida | 2008/10/04 23:57 | 케노비
어느 새 이번 달 셋째 주면 중간고사다,

이번 학기가 끝나면 군대로 끌려갈 판국이기 때문에,

가뜩이나 기분이 그렇게 밝지는 않는데,(물론 상황이 이렇지 않더라도 나는 항상 어둡다,)

최근 일어나는 일들, 그러니까 올해 초부터(굳이 저 위에 계신 분 때문이라곤 않겠다) 시국이 심상치 않아서,

고질적인 우울증이 도진 상태,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의욕이 앞서서 그랬는지,

이번학기 시간표를 전공과 이중전공 과목으로 짜는 과오를 범하고 말았다,

게다가 이중전공에 통계학/경제학원론 교수가,

새로 오신 분인데, 수업은 발로 하시면서 과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내주셔서,

일단 학업 관련해서 계속 진행해나가는 게 너무나도 힘든 상황,

거기다가 과외 학생 둘 중 하나는 계속 해서 말을 죽어도 안 듣고,

내가 보기엔 발전이 전혀 안보여서 이제는 인내심의 한계에 다다라서 할말 못할말을 간신히 가려 말하는 판이고,

대학교 들어오면서 일을 한번도 쉰 적이 없는 터라 이제는 좀 쉬고 싶기도 한데,

제대 한 뒤에 지금처럼 과외가 잘 들어올까,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등록금을 어떻게 벌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벌 수 있을 때 바짝 벌자 라는 생각으로 근근히 버티는 중이다,

거기다가 동아리를 대체 왜 공연 동아리를 들었는지,

작년 정기공연도 참여하지 못했는데, 이번에도 등록금을 버느라 참여하지 못하게 되어버리고,

더군다나 정모에도 참여하지 못하는 판국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번학기는 그냥 동아리 관련해서는 모든 걸 놔버리고 좀 책임감을 더는게 살기 위해서 낫겠다 싶었는데,

아이들이 계속 연락을 해오니까.......

그 아이들 입장에서는 내가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고(내가 좋아서든, 일손이 줄어드는 게 싫어서이든 간에,),
그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






결국, 이 장황한 신세한탄을 한 줄로 줄이자면,

사는 게 이렇게 낙이 없으면, 난 대체 무얼 위해서 태어난 건지 모르겠다,

살아간다는 게 더 이상 축복이 아니라, 저주인것 같다,

주변에 이런 말을 할 사람은 없고, 그리고 말해도 더 이상 나아지지 않으리란 걸 잘 알고 있으니까,

이런데에라도 풀어놓으려고 한다,

솔직히 말해서, 주변에 있는 모든 일이 부질없어보이기도 한데,

그래도 목숨을 걸고 그걸 하는 이유는,

그걸 하지 않는 순간,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 자체가 사라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나도 내가 어떻게 될지 몰라서,
이제 뭐 같잖아서-_-.....그러려니 하고 한번 확인해봤는데 역시나,

(근데 GS관련 사이트에 언제 가입을 했는지 기억조차도 안난다;;;)

지난번 옥션 때도 그렇고,

내 주민등록번호와 전화번호 및 이메일은 길바닥 굴러다니는 먼지보다도 더 하찮은 취급을 받고 있다,

일차적으로는 왜 인터넷 사이트를 가입할 때 주민등록번호를 써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외국 사이트들에서 개인정보 유출 사례가 거의 없는(솔직히 이것에 대해서는 확신을 못하겠다) 걸로 아는데,

구글이나, 유투브, 심지어 거래를 위해서 이베이에 가입했을 때에도,

주민등록번호를 넣는 경험을 해본적이 없다,

좀 심한 얘기인것 같긴 하지만, 외국인들을 위한 가입이 따로 이루어지는 것도 좀 이상한 것 같고,

(위의 예가 세계적인 사이트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사이트들은 자기네 사이트에 가입하는 사람들을 한국인으로 단정짓는 경향이 아주 많은 것 같다, 외국인들 가입할때는 우리나라에서 준 외국인번호 비슷한걸 입력해야 하지 않나?)

아무튼 결론은,

제발 인터넷 사이트 가입할때 주민등록번호좀 묻지 말자,

그리고 액티브엑스좀 제발 어떻게 하자, 외국 사이트들은 은행사이트도 그거 안쓰고 https 쓰더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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