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일’ 이후로, 영화는 불친절해졌다.
2008년 영화계는 ‘클로버필드’라는 한 편의 영화로 막을 열었다. 정체불명의 대 괴수가 뉴욕 맨해튼을 휩쓸고 다닌다는, 극도의 간단한 플롯을 가진 이 영화는 단 한가지 이유로, 제작과정부터 시사회까지, 그리고 개봉 이후로도 아주 압도적인 티켓파워를 자랑하며 승승장구했다. 바로 ‘불친절하다’는 이유.
이 영화는 어떻게 해서 이 괴물이 만들어졌는지, 심지어 어떻게 생겼는지, 그리고 이 일이 있고 난 뒤 괴물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그 어떤 설명도 하지 않는다. 단지 끊임없이 부서지는 건물들의 모습과 도망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이 영화는 ‘대 괴수침공’이라는 소재를 사용하면서도 시네마스코프(2.35:1) 비율을 사용하지 않고 실제 캠코더의 HD 비율(16:9)을 사용하고 있으며 영화가 끝나가도록 부감샷을 쓰지 않는다. 한마디로 말해, 이 영화는 관객이 괴물이 도시를 침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만 할 뿐, 도시를 침공하고 있는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다는 의도를 전면에 내비친다.
할리우드 영화는 그 시대의 재난의 모습을 빌어 대표적인 상징을 드러낸다. 그리고 2001년의 ‘그 일’ 이후로, 할리우드는 테러리즘을 끊임없이 변주하고 있다(우주전쟁, 뮌헨, 클로버필드, 나는 전설이다 등등.) 9.11 전과 직후 적은 분명해 보였지만 미국이 스스로 시작한 전쟁이 또 다른 악몽이 되면서 적의 존재는 점점 희미해져 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강한 존재로부터 공격받고 있다는 불안감에서 오는 극한의 두려움, 그 손아귀에서 헤어나거나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는 완벽한 절망감, 더군다나 이 모든 것들이 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자기 눈 앞에 드러날 수 있다는 사실을 전면에 표방하고 있는 영화들이 21세기에 들어서 물밀듯이 쏟아지고 있다.
포스트 9.11 재난 영화의 모습은 사건 전체에 대한 논리적 설명의 부재, 난데없는 재앙의 시작, 어찌할 바 없이 방황하는 무기력한 인간들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끝을 드러내지 않거나 완전한 해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그 공포를 영화가 끝난 이후에도 이어가는 모습으로 정형화된다. 가장 결정적으로, 이러한 영화들은 주인공이 어떠한 것을 상대하고 있는지 명백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들은 적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갖추지 못한 무방비상태로 그들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단순히 할리우드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괴물』이 그러했고, 이제부터 이야기할 스페인의 『●REC』 도 그러하다.
‘클로버필드’의 유럽 판?
영화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을 하자면, TV 프로그램의 리포터와 카메라맨이 촬영을 위해 소방서에 방문한다. 소방관들의 일상을 취재하던 중 한 통의 구조요청 전화가 울리고, 대원들을 따라 사고현장으로 출동한 이들은 밀착취재를 시도한다. 그러나 건물 안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음을 느낀 일행들은 급히 탈출을 시도한다. 하지만 모든 출입문은 당국의 폐쇄조치로 봉쇄된 상태. 원인도 모른 채 꼼짝 없이 건물 안에 갇히게 된다. 그 와중에 무언가에 전염된 듯 사람들이 하나 둘 기이하게 변하고, 아직 온전한 사람들은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건물 안을 벗어나려 한다.
이 영화는 클로버필드가 개봉한 직후에 나왔고, 여러모로 같은 포맷을 차용했다는 이유로 여러 쓴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두 영화 모두 위에 말한 포스트 9.11 재난 영화의 전형적인 형태를 띠고 있고, 현장감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을 애초에 영화 내 인물로 설정하며 영화 전체를 핸즈헬드 ‘캠코더’로 촬영하며 이로 인해 발생하는 화면의 흔들림을 전혀 배제하지 않고 오히려 부각시켰다. 클로버필드가 REC보다 훨씬 흥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할리우드의 자본과 지저분할 정도로 치밀했던 노이즈/티저 마케팅 덕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 자체만을 두고 봤을 때 REC가 더 우위에 있는 것은 확실한데, 이제부터 그 점을 말해보고자 한다.
내내 클로버필드를 ‘재앙 영화’라고 칭했지만, 이 영화는 사실 ‘재앙 속의 러브 스토리’다. 중요한 것은 괴물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위험해 처해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REC는 괴물이 나타났고 우리는, 그보다도 자신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상대적으로 한가지 소재에 집중한 REC는 비슷한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훨씬 공포의 밀도가 높고 정돈되어 있다. 소재와 관련해서 한마디 더 하자면, 클로버필드는 괴물이 나오는 영화고, REC는 변종 인간, 쉽게 말해서 좀비가 나오는 영화다. 인간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무서워하지만, 자신과 소름 끼칠 정도로 비슷하게 생겼지만 미묘하게 다른 것에 공포를 느끼고 심한 경우 공격성을 갖게 되기도 한다. 그 대상도 자신에게 공격성을 띌 때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클로버필드보다는 이쪽이 더 원초적인 공포를 잘 건드렸다고 본다.
영화 전체가 부감샷과 시네마스코프 비율을 일절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스크린 자체의 모습은 좁고 갑갑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클로버필드와는 달리 REC의 경우는 배경이 되는 장소 자체도 정부에 의해서 철저하게 봉쇄된(심지어 핸드폰도 수신되지 않는다!) 아파트 건물 하나로 좁게 한정시켜 버린다. 관객이 물리적으로 보는 모습과 더불어 배경상 머릿속에 떠오르는 모습 자체가 폐쇄적인 형상을 띠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관객은 이 습격으로부터 절대로 도망갈 수 없다는 생각을 깊숙이 심어버리게 되고 나타나는 모든 재앙들이 훨씬 더 현장감 있게 보인다.
군중 속의 고독, 무능한 정부, 21세기의 슬픈 자화상.
공포영화가 가지는 가치는, 단순히 웃고 즐기는 오락거리로만 치부되는 이 장르 안에 당시 시대의 문제점을 관통하는 비유와 날카로운 비판이다. 조지 로메로 감독의 좀비 영화 3부작(공교롭게도 이 3부작의 마지막인 ‘Diary of the Dead’ 또한 클로버필드와 REC와 같은 포맷을 띄고 있다.)이 대표적이다. 물론 단순히 피가 난자하는 슬래셔 영화도 있고, 단순한 공포 만을 선사하는 영화도 많지만 의외로 공포 영화에 숨어있는 비유는 단순히 웃고 넘기지 못할 내용들이 많다.
앞에서 간단히 말했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괴물이 나타났고, ‘나는’ 살아남아야겠다는 내용이다. 이 안에 있는 열명 남짓의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서로가 서로를 믿고 있지 않는 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 수 있다. 영화적 장치이지만, 자신과 함께 일하던, 혹은 같은 위치에 처해있던 사람에게 좀비 바이러스가 전염되자 가차없이 몰아내고 수갑을 채우며, 한치의 망설임 없이 공격하는 모습도 그렇고, 초반부에 나오는 인터뷰 장면에서 일본인인지 중국인인지 모를(일본인이었다) 동양인들에 대한 막연한 의심을 보이는 사람의 모습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이웃에 대한 관심도 없으며, 이웃이건 그날 처음 본 사람이건 간에 타인에 대한,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자신과 다르거나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대상에 대해 인간적인 애정이 사라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에게 남은 것은 자신이 살아남아야겠다는 원초적인 본능과 중간에 지나가듯 한번 나오는 모성애, 가족애일 뿐이다.
군중 속의 고독이라는 말은 이미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이제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타인은 단순히 무관심의 대상이나,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트리게 되는 대상이 아니라 자신과 다르기 때문에, 자신과는 이해관계상 대립되거나 심지어 단순히 무관하기 때문에 배척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영화는 단지 그것을 자신의 생명이 달린 극한 상황에서 보여줄 뿐이다.
영화의 극 초반부, 정부는 비상사태를 선포하며 주인공들이 있는 건물 전체를 봉쇄하게 된다. 곧 전문가 두세 명이 피해자들을 보기 위해 들어오고 이들도 바이러스에 전염되면서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리고 남은 러닝타임 내내, 밖에 있는 정부 관계자들은 나오지 말라는 말만을 되풀이 할 뿐이다.
21세기만큼 대중의 힘이 막강해진 때도 없다. 인터넷과 통신기술은 산골 오지의 사람들과 도시 한복판에 있는 사람을 연결시키고, 더 이상 정부의 극비사항이란 것은 존재할 수가 없게 되었다. 국가 권력의 위상은 그만큼 실추되고, 하나로 응집되지 않고 광범위하게 퍼진 형태를 가진 대중의 힘이 정확히 그 반대의 속성을 가진 국가 권력의 힘을 압도하면서 더 이상 대중들은 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정부를 믿지 않게 되었다. 이를 반영해서, 사건 해결에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정부의 모습은 비단 REC에서만 보이는 모습은 아니다. 정부의 요원이 주인공인 007로 대표되는 첩보물이, 21세기에 들어서는 정부를 적으로 돌린 제이슨 본 시리즈로 대체되는 과정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REC에서는 특이하게도 아예 플롯 전개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을 배제시키고 오히려 문제를 심화시키는 요소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영상은 ‘당신이 잠든 사이에’라는 TV 다큐멘터리의 내용입니다.
물론 실제로 저런 변종 인간이 설치고 다닐 리는 만무하지만, 이 영화는 소재와 촬영기법 모든 면에서 ‘극도의 리얼리즘’을 표방하고 있다. 감독은 이 ‘사실주의’를 실천하고 조율하는 과정에서 영화가 현실의 허구적인 반영을 가장 효과적으로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당신이 잠든 사이에(Mientras Usted Duerme)라는 프로그램은 실제 스페인에 있는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에서 6시쯤에 하는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부류의 현장르포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주인공 Ángela역을 맡은 Manuela Velasco는 실제 이 프로그램의 리포터로 활약하고 있으며, 카메라맨 역할을 맡은 Pablo Rosso는(극 중 이름도 Pablo이다!) 실제 촬영감독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지 모르는 우리들에게는 와 닿지 않겠지만 스페인 현지에서의 반응은 폭발적이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또한 중간에 나타나는, 난간 사이로 시체가 난데없이 떨어지는 장면은 사전에 약속되지 않은 상황이었고 순수하게 놀란 배우들의 모습을 제대로 잡아낼 수 있었다고 한다.
맺으며,
영화 외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지만, 이런 식으로 극도의 현장감과 현실성을 강조한 작품들이 쏟아진 지는 오래 전이다. 이 영화도 여느 영화들과 다를 바가 없고 일전의 공포 영화와 비슷한 구조를, 심지어 낮은 예산을 처리하기 위해 한정된 배경을 설정하는 것까지도, 취하고 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생각난 것은 2004년에 마드리드에서 있었던 열차테러 사건이다. 뭐 정치적인 술수로 인해서 ETA에게 뒤집어 씌우려 했다 라는 것보다도, 이러한 무차별 테러가, 다른 대륙의 미국이 그러했던 것처럼 역시 스페인에도 비슷한 영향을, 특히 영화에 비슷한 영향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한 편으로는 이러한 공포가 전 세계적으로 나돌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슬프기도 하지만 말이다.